장기하와 얼굴들

일단락. 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네 번째 공연, 앵콜 전 마지막 노래인 ‘TV를 봤네’를 남겨두고서 이제 장기하가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멘트를 할 차례가 되었다. 2008년 5월 장기하와 얼굴들을 만들고 처음으로 공연을 하러 집을 나서면서 이제 무엇인가 확실하게 변화할 것이라고 느꼈다면서, 그 후 3년이 지난 오늘 공연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며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고 나직하게 관객에게 말한 장기하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혔다. 3년 반 동안의 장기하와 얼굴들을 ‘일단락’하며 당분간 안녕을 고하고 있음을 가슴 아리게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었다.

2011년 11월 19일과 20일은 부산에서, 25일과 26일에는 서울에서 총 4일간 펼쳐졌던 장기하와 얼굴들 2집 활동 마무리 콘서트 ‘일단락’은 드러머의 김현호의 입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안녕을 고하기 위해 마련된 공연이었다. 모두 6천명의 관객들이 정든 동료와 잠시간 이별을 해야 하는 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공연이 슬픔에 찬 입영열차의 플랫폼 같은 분위기였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동안 장기하와 얼굴들이 했던 공연 중 최고로 멋지고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마치 매번 경기에 나갈 때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육상선수 마냥 공연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나아지는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번 공연에서도 어김없이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작’이었던 노래인 ‘싸구려 커피’로 막을 올린 공연의 전반부가 주로 조용한 노래들로 장기하의 섬세한 표현을 가감 없이 느끼게 했다면, 그들의 대표적인 선동곡 ‘나와’와 함께 시작된 후반부는 관객들을 아주 끝까지 흥분시키는 그런 공연이었다. 셀 수 없는 합주와 공연을 거쳐 물이 오를 만큼 오른 멤버들의 연주들이 이뤄내는 조화는 치밀하게 계산된 영상과 어우러지며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절묘한 완급 조절과 함께 굉장한 카리스마로 ‘부흥스킬’을 시전한 ‘장교주’를 필두로 이민기, 정중엽, 이종민, 김현호, 그리고 하세가와 요헤이가 뽑아내는 사운드는 완벽한 호흡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키며 진을 완전히 뽑아놓았다. 특히 종반부의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에서 현란한 영상과 함께 멤버들의 불꽃 튀는 연주가 어우러지며 자아냈던 무대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굉장한 광경을 자아냈다.   

처음으로 서울 바깥에서 가진 단독 공연인 두 번의 부산 공연을 포함한 네 번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은 3년 반의 역사를 ‘일단락’했다. 그리고 기약 없는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아직 멤버들을 비롯한 누구도 언제 그들의 활동이 재개될 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밴드 멤버들의 호흡이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시점에 ‘당분간 안녕’이라니,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네 번의 ‘일단락’ 무대가 굉장했기에 아쉬움이 더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공연은 ‘대단원’이 아니라 일의 한 단계를 끝내는 ‘일단락’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잠시 동안의 이별일 뿐, 다시 장기하와 얼굴들은 돌아올 것이다. 깜짝 놀랄 만큼 한층 더 나아진 모습으로, 또 한번 자신의 최고를 경신하면서.

장기하 ‘일단락’ (2011.12.01)

26일 막공을 마치고 마냥 쉬었습니다.
4회의 콘서트 함께 해 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공연이라 준비기간도 짧고 여러 힘든 점들도 많았는데,
덕분에 아무 후회 없는 공연이 되었어요.
공연이 끝나서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저는 별로 아쉽지 않습니다.
제가 목석 같은 인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이후로,
새로운 공연을 할 때마다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 바뀌어 왔습니다. 
 
이번 일단락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보다 기대감이 더 큰 것입니다.
저희는 이제 충분히 쉬면서 다시 재미난 일을 꾸밀 겁니다.
그래도 이런 저런 기회로 인사드릴 일은 종종 있을 거예요.
산울림 트리뷰트 음원 및 음반이 곧 발매될 것이고,
그 외에도 어딘가에서 등장할 계획이 몇 개 더 잡혀 있습니다.
주시해 주세요. 하하.
 
물론 일곡일담도 계속됩니다.
 
속터지셔도, 인간이 오죽 느리면 느리게 걷자고 노래까지 했을까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연 때도 얘기했고 이 글의 첫머리에서도 얘기했지만,
함께 해 줘서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Set List

01. 싸구려 커피
02. 정말 없었는지
03. 그때 그 노래
04. 말하러 가는 길 (19일, 25일) /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20일, 26일)
05. 마냥 걷는다
06.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07. 나와
08. 뭘 그렇게 놀래
09. 깊은 밤 전화번호부
10. 나를 받아주오
11. 아무것도 없잖어
12. 오늘도 무사히
13. 달이 차오른다, 가자
14. 조금만 기다려요 (산울림 cover)
15. 우리 지금 만나
16. 기상 시간은 정해져 있다
17.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
18.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19. TV를 봤네

(앵콜)
20. 별일 없이 산다
21. 그렇고 그런 사이